여러분 한반도 3대 대첩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귀주대첩, 살수대첩, 한산도대첩은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들의 3대 대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고려 거란 전쟁으로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귀주대첩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거란의 3차 침입)의 원인과 배경
우리나라는 통일신라말 지방 호적들이 성장하면서 다시 견훤이 세운 후백제,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 신라로 분열되어 후삼국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중 후고구려의 왕이었던 궁예는 폭정으로 인해 쫓겨나고 부하였던 왕건이 국왕으로 추대되면서 수도를 철원에서 개경(개성)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고려로 고쳤습니다. 이후 고려는 신라와 후백제의 항복을 받아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고려는 나라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를 잇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북진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을 통일했던 송나라와 정식적으로 국교를 맺으면서 송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고려의 친송 정책과 북진 정책이 당시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거란을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압록강 유역에 살고 있던 거란은 고려가 송과 군사 동맹을 맺어 자신들을 공격할까 고민이 있었고 고려와 외교를 맺으려 했으나 고려는 거란을 야만인이라 생각하여 싫어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왕건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라 생각해 무척 경계했으며 942년 거란이 고려와 친해지기 위해 낙타 50마리를 사신과 함께 보낸 적이 있었는데, 태조인 왕건은 그 낙타들을 다리 밑에 묶어 굶겨 죽였습니다.
거란의 1,2차 침입
거란의 1차 침입은 고려의 성종 때인 993년,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한 사건입니다. 이때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서희가 등장하여 전쟁을 막고 서경 이북땅을 찾아온 일은 너무나 유명하죠.
거란의 2차 침입(1010년)은 여러분들이 최근 드라마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강조(도순검사)의 정변'이 일어나 목종을 몰아내고 현종이 왕이 되었을 때였으며, 거란은 거란의 황제가 임명한 고려의 황제 목종을 몰아냈다는 구실로 고려로 쳐 들어온 것입니다. 이때 강조는 거란군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개경이 함락되었으며 왕인 현종은 거란에 직접 찾아가 신하의 예를 갖추겠다고 치욕적인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란은 1차 침입 때 서희가 지켜냈던 강동 6주를 반환받을 것을 약속받습니다.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후 1018년 고려가 반환 하기로 한 강동 6주를 내놓지 않자 1018년 거란의 소배압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3차 침입)하게 됩니다.
이때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8천의 대군을 이끌고 거란과 맞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거란군은 평안북도 홍화진을 통해 내려오고 있었고 강감찬은 기병 1만 2천여 명을 산골짜기에 매복시킨 후, 거란군이 지나갈 홍화진 앞의 삼교천을 막아 수심을 얕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란군이 삼교천을 지날 때 둑을 터뜨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삼교천을 건너던 거란군은 쏟아지는 물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었고, 매복해 있던 기병들에 당하며 그야말로 대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란군은 이런 큰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개경 근처까지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이때 강감찬은 다시 적이 먹을 식량과 물을 모두 없애는 '청야 작전'을 펼쳐 또 다시 거란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타격을 입은 거란군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으며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강감찬은 기습공격으로 거란군을 크게 무찌릅니다.
이렇게 2번의 큰 타격을 입은 거란군은 서둘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강감찬은 또다시 적이 꼭 지나가야 하는 귀주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맹공격을 퍼붓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된 귀주대첩입니다.
이렇게 10만대군을 이끌고 왔던 거란은 겨우 수천 명만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야말로 고려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고려에 쌓아 올려진 천리장성
3차에 이른 전쟁으로 고려와 거란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협상을 맺게 됩니다. 거란은 강동 6주를 포기하게 되었고, 고려는 친송정책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후 고려는 11년간의 긴 세월에 결쳐 압록강 입구부터 도련포에 이르는 성을 쌓게 되고 이것이 바로 천리장성입니다.
이렇게 한반도 3대 대첩중 하나인 귀주대첩과 천리장성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았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울때 이렇게 역경을 이겨낸 조상님들이 안 계셨다면 우리의 지금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요?
우리의 선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3.12.16 - [분류 전체보기] - 2024년 무료 신년운세 보기 사이트 확실한곳